[주일설교] 마라에서 다시 나오미로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 룻기 1:19-21
 

Mother’s Day는 많은 이들에게 기쁨의 날이지만, 동시에 과거의 아픔과 상실을 떠올리게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자녀를 잃거나, 어머니를 잃었거나, 혹은 상처 받은 관계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이 날이 결코 단순한 축하의 날이 아닙니다. 성경 속 나오미 역시 그러한 인물이었습니다. 기근을 피해 떠난 이민의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고 고백할 만큼 깊은 슬픔 가운데 있었지요.

나오미는 빈손으로 돌아오며 고향 베들레헴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베들레헴, 즉 ‘빵집’은 하나님의 임재와 공동체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바로 그런 베들레헴이 되어야 합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이 다시 소망을 품고 찾아올 수 있는 곳, 이방인이든 상처입은 자든 누구든 품을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나오미를 맞이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그녀를 정죄하고 과거를 들추며 외면했지만, 보아스처럼 공감과 배려로 반겨준 이들도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 두 부류의 사람 가운데 어떤 부류가 더 많은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사렛사람교회가 보아스와 같은 공감의 공동체, 조건 없는 환대와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룻과 나오미의 이야기는 단지 슬픈 여성의 이야기로 성경에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룻은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었고, 결국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남았습니다. 고통과 절망 가운데 있었던 나오미도 다시 ‘희락’으로 회복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의 아픔도, 실패도, 상실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회복되고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마라라 불리는 우리를 다시 나오미로 회복시키십니다.

기도: 하나님, 혹시 이 자리에 나오미와 룻처럼 이방 땅의 어려움과 어머니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상처와 죄책감 속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성령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배타성을 가진 이들에게는 공감과 배려의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고, 보아스와 같이 섬기는 이들에게는 성령의 은사를 풍성히 주시옵소서.

이 교회 바깥에도 예수를 몰라 방황하는 수많은 나오미와 룻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 나사렛사람 교회를 통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더 이상 자신을 마라라 하지 않고 나오미라 부를 수 있도록, 우리의 예배와 섬김을 통해 그 일을 이루어 주옵소서.

(참고: 이 요약본은 AI 초안을 근거로 제작되었습니다.)

Previous
Previous

[주일설교] 리더십 정신

Next
Next

[주일설교] 나사렛의 예수